사소한 움직임에도 배어 있는 춤, 스스로도 종잡기 어렵다는 다차원적 캐릭터,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미, 그리고 샘솟는 영감들. 유아를 이루는 그 모든 반짝이는 것들.
A 활동을 시작할 때 부모님이 작명소에 가셨는데, 거기서 그랬대요. 연주라는 이름이 조금 아쉽다고. 그래서 지어오신 이름이 유시아였고, 그렇게 개명을 했는데 연예 활동은 ‘시’를 빼고 유아로 하게 됐고요. 샤샤는 시아라는 이름에서 나온 애칭이죠. 다들 저를 다르게 불러요. 그런데 저는 그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제 안에 여러 가지, 저도 알 수 없는 여러 면모가 있는 것 같거든요. 기분 좋을 때 이런 모습이 있고, 우울할 때의 나도 있고, 맛있는 걸 먹으면 또 다른 면이 보이는 것 같고. 제가 원래는 이런 노래를 들으면 이런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가끔씩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제 변화에 대해서 한계를 두지 않게 된 거죠. 덕분에 제가 좀 다양하게 보여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시아일 때는 이런 사람, 유아일 때는 이런 사람, 그리고 시아가 되기 전 연주였던 시절에는 이랬던 사람. (몸을 움츠렸다 폈다 하며)
톱, 쇼츠, 샌들 모두 미우 미우. 브레이슬릿 넘버링.
A 가끔은 스스로도 묻는데요. ‘나 어떤 사람이야?’ 하고. 그래도 결국은 그걸 존중해주는 편인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사람일 때도 있지, 그리고 저런 사람일 때도 있지.’ 그게 사실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글 쓰는 것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말하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가끔 힘든 부분도 있지만 이런 분야에서 일을 하기에 좋은 부분이 더 많은 사람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A 가끔 ‘뭐 저런 애가 있어?’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잘 모르는 분은 제가 아예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사실 저는 집에 있으면 소파에서 혼자 춤도 추고, 설거지하는 엄마 옆에 붙어서 미주알고주알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고, 말도 많고 애교도 많은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또 되게 어두운 부분도 있어서 외로움도 잘 느끼고요. 웃기지만, 혼자 있으면 고독하다고 느끼는 시간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를 잘 아는 사람도 유아는 참 독특해, 참 신기해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A (웃음)
A 제가 춤을 되게 늦게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쯤. 그때 안무가라는 꿈이 생겼고, 그래서 학원도 다니고….
아예 처음 춤을 추기 시작한 건요? 춤에 소질이나 재미가 있다는 걸 아니까 안무가가 꿈이 되었을 거잖아요.
그냥 저희 집 문화가 워낙 그랬어요. 아버지가 노래하고 춤추는 걸 너무 좋아하시고. 할머니, 고모, 큰아버지, 뭐 다들 좋아하시거든요. 그래서 식탁에 다 같이 앉아 있으면 담소를 나누다가 할머니가 젓가락으로 장단을 치면 다 같이 장단을 맞춰주고.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고 나면 다음으로 큰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고, 그다음에 고모가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까지 끝나면 저희도 뭔가를 보여줘야 했거든요. 오빠랑 저는 그때 이상하게 노래보다 춤이 먼저였어요. 이렇게 머리를 막 돌렸던 기억이 나요. 소극적인 아이였는데, 그 안에는 뭔가 발산하고 싶은 에너지가 있었나 봐요.
A 저야 모든 집이 다 그런 줄 알았죠.(웃음)
A 오빠도 춤으로 진로를 정한 게 좀 늦은 편이었거든요(유아의 오빠는 안무가 유준선이다). 그래서 어느 날 부모님한테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춤으로 진로를 정했는데 다른 친구들보다 몇 년이나 늦었으니, 학교를 그만두겠습니다. 대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그러고는 검정고시를 보고, 남들 학교 갈 시간에 춤을 춘 거죠. 그런 오빠를 보면서 저는 좀 놀랐어요. 자극이 되어서 그런지 저도 춤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고요. 하지만 아무리 확신을 보여줘도 부모님은 좀 불안할 수 있잖아요. 오빠도 확 저질렀는데 저까지 안무가가 되겠다고 하니까. 그래서 저한테 가수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설득을 하시더라고요.
A 그런 때도 있었죠. 나중에는 제가 신이 나서 했지만.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는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어요. 제가 정말 열정파거든요. 뭐 하나에 꽂히면 선생님이 제발 집에 가라고 할 때까지 하고 그래요. 제가 또 연습생 기간이 굉장히 짧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실력으로 대중 앞에 서도 될지, 불안한 부분이 있었어요. 춤이야 정말 열심히 했지만 노래나 다른 부분은 멤버들에 비해 부족한 것 같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죠. 노래를 배운 지는 얼마 안 됐으니까 데뷔 후에도 정말 열심히 했고.
A 맞아요. 많은 분이 제가 한 곡을 혼자 다 부르는 걸 그때 처음 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솔직히 그만큼 자신도 있었죠.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진짜 피나게 연습했으니까. ‘몰랐죠? 저 이만큼 할 수 있어요.’ 물론 불안감도 있긴 했지만, 그런 마음이 컸어요.
니트 디올.
A 제가 스스로 자꾸 다중적이라고 말하는 게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Romeo N Juliet’ 같은 목소리, 감성도 제가 너무 좋아하는 부분인데 또 이 안에 꿈틀대는 뭔가가 있는 것 같거든요. ‘코뿔소’를 고른 것도 그래서예요. 저의 다른 취향,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서.
A 네 맞아요. 아유, 감사합니다.(웃음)
A 다르게 하려고 신경을 썼다기보다는, 그냥 그 곡을 그렇게 해석한 것에 가까울 것 같아요. ‘이 곡은 이런 느낌이니까 이렇게 풀어야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몰입한 거죠. ‘자각몽’을 들었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를 스케치해서, 그 사람이 되어서 노래를 부르고. 또 ‘숲의 아이’는 그 안에 숲의 아이가 가진 스토리와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 아이가 되어서 부르고. 저는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래든, 춤이든.
A 어우, 저 완전 공감해요. 제 모토도 그렇거든요. 뭔가를 전달하려면 절대 ‘척’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대중들 눈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다 알거든요. 쟤가 지금 이 노래에 대해 이해를 하고 부르는지, 아니면 그냥 척을 하는 건지. 제가 그 이야기에 몰입하지 않으면 그 곡에서 보여주고 싶은 에너지도 전달 못 하는 것 같아요. 전달될 리가 없죠.
A 너무 하고 싶어요. 기회만 된다면. 저는 사실… 좀 웃긴데, 혼자 거울 보고 연기를 많이 하거든요.(웃음) 연기에 꿈이 있어서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요. ‘나 어떻게 할 때 예쁘지?’ 하면서 보다가 슬프면 어떤 얼굴 나오는지 보고 싶어서 한번 해보고. 반대로 기뻐할 때 얼굴도 보고. ‘내가 이런 얼굴이구나’ 하는 걸 많이 기억하려는 것 같아요. 같은 얼굴인데도 달라지는 건 제 에너지가 바뀌어서 나오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과정에서 몰입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배우고 〈숲의 아이〉에 대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도 거울 보면서 장난을 많이 쳐요. 혼자 노는 거죠.
A 제가 그런 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물론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만드는 무대도 좋지만, 스탠드 마이크 하나 두고 노래하는 그런 무대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작은 무대에서, 그냥 제가 그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제일 재미있으니까요. 그런 무드도 좋고, 또 그렇게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유아 씨에게는 어떻게 남았어요? 〈숲의 아이〉 솔로 활동이?
뭐랄까. 제 안에 있는 작은 부분을 툭 보여줬는데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잖아요. 그래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어? 나를 더 보여줘도 되겠네?’ ‘더 사랑받고 싶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죠. ‘어떻게 하면 더…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제 안에 있던 걸 보여드린 거잖아요. 그걸 더 발전시키고 싶다, 스스로를 좀 더 믿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아의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3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愛と幸福そして別離と痛みを話しているところ...오마이걸 (OH MY GIRL) 커뮤니티 (Community)
오마이걸 커뮤니티에서 사진, 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확인해보세요.
계속하면 오마이걸 커뮤니티 이용 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에 동의하게 됩니다.